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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이야기

식장산 - 만인산 능선 종주 실패기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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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8년전인 2015년
당시 본인은 방구석 폐인이었다.

무엇을 해도 잘 풀리지 않아

자신감이라고는 없어진지 오래.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외부활동을 단절한채

방구석에서 무의미하게 밥과 시간만 축내던

바깥활동이라고는

어둑어둑해질 시간이 되면

인근 천변 산책로에서

두시간 정도 걷고 오는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보문산이 생각났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시절 단골 소풍 장소였던 그곳
놀이동산과 볼거리 먹을거리가 가득했던 그곳
등산객과 나들이객들로 사람들이 항상 넘쳐나던 그곳
가깝지만 가깝다고 등한시했던 그곳

'어차피 내려올거 왜 올라가?'

누가 등산에 대해 얘기하면

반사적으로 내입에서 나오던 말이다.

내 인생에 등산이란

학교 수학여행이나

군복무시절 훈련으로 가야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의 의지로 억지로 떠밀려 가야하는
두번다시 하고 싶지 않은
아주 힘들고 귀찮은 허드렛일과 같았다.

그랬던 나인데

보문산에 가보고 싶어졌다.
이번엔 남의 의지가 아닌 온전한 나의 의지다.
그렇게 산행은 시작되었다.


2015.07.28 ~ 08.18 보문산 등산

2015년 7월 28일(화) 야외음악당으로 진입 - 보문산성 - 시루봉 - 고촉사 방면으로 하산
2015년 8월 03일(월) 동명중학교 앞길로 진입 - 마애여래좌상 - 보문산성 - 순환숲길 - 동명중학교 뒤쪽으로 하산
2015년 8월 12일(수) 동명중학교 뒷길로 진입 - 마애여래좌상 - 보문산성 - 시루봉 - 동명중학교 뒤쪽으로 하산
2015년 8월 18일(화) 부사동 참좋은 아파트로 진입 - 보문산성 - 시루봉 - 전망대 방면으로 하산

 

보문산에도 굉장히 많은 등산로가 존재하는데

예전 기억을 되살려 야외수영장, 그린랜드, 야외음악당을 지나 산길로 진입하는 등산로를 선택

등산장비라곤 전무한 상태로 500ml 물병 하나 들고 보문산에 올랐다.

보문산성에서 보이는 식장산 전파탑

보문산성에서 보이는 광활하고 탁트인 대전 시내뷰는 봐도 봐도 상쾌하고 시원하다.
그렇게 풍경을 감상하던 중 저 멀리 보인것은 식장산

'장하다 보장산의 큰 뜻을 받아'
본인의 모교 교가 중 한 구절이다
대전에 보장산이라는 산은 없다.

보문산의 보
식장산의 장
그러니까 보장산은 보문산과 식장산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모교에 양옆으로 인접한 보문산과 식장산.
그러고 보니 보문산은 많이 가봤지만
식장산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구나

어린시절부터 기억하고 있던 식장산의 괴담
'식장산 정상에는 군부대가 있고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이며
모르고 올라갔다가 총맞고 죽은 사람이 있다'
이런 도시전설같은 이야기도 어린 나에게는 큰 공포로 다가왔나보다
그래서 식장산은 가깝지만 기억에서 잊혀진 존재였다.

이제 보문산은 정복(?) 했으니
식장산도 한번 가봐야 겠다.


2015.08.26 ~ 09.10 식장산 등산

식장산 등산 GPS 루트

2015년 8월 26일(수) 천손짜장 옆길로 진입 - 고산사 포장길에서 오른쪽 산길로 진입 - 정상
2015년 8월 31일(월) 천손짜장 옆길 - 고산사 포장길에서 왼쪽 산길로 진입 - 능선 - 정상 - 해돋이 전망대 한바퀴
2015년 9월 10일(목) 은어송 중학교 뒷길 - 고산사 포장길 왼쪽 산길 - 능선 - 정상

 

식장산은 처음이라 카카오맵(당시 다음지도)에 나온 등산로중 고산사를 통한 가는 길로 결정.
가오삼거리를 지나 직진해 나아가면 된다.

입구 초입에 있던 천손짜장

처음 생겼을때는 손님도 많고 장사도 잘되는

배달안하는 맛집 이었는데
주방장이 바뀐건지 내 입맛이 바뀐건지

차츰 방문이 뜸해졌고

어느날 주변에 지나가다 보니 소머리국밥집이 되어 있더라.

 

 

이윽고 식장산 정상에 도착

보문산보다 높다보니 시간도 더 걸리고 체력소모도 더 심했다.
그렇게 힘들게 오른 첫 식장산 정상이었지만 감흥이 보문산에 비해 덜하다.
이유인즉 정상에 방송시설과 군시설이 자리잡고 있고
시설 보호차원에서 주변으로 철책이 있다보니
보문산과 같은 시원한 조망이 나오질 않는다는거.

 

다음 등산에서는 정상에 오른뒤 연결된 길을 이용해서 전망대를 목표로 잡았다.

한번 가봤다고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등산로를 이용해보기로 한다.
고산사로 오르는 길은 자동차도 올라갈수있는 포장길이라 산에 오르는 기분이 들지 않아서
초입에 있는 등산로를 이용했다.
이쪽길 초입부터 능선 합류까지 무덤이 굉장히 많다.

관리된 무덤도 있는 반면 풀이 무성하고 흙도 다 쓸려 내려온 관리 안된 무덤도 있었다.

식장산 해돋이 전망대에서 보는 판암동 뷰

이게 내가 원한 시원한 조망 아니었을까?
보문산에서 볼때보다 더 시원하게 트인 대전의 풍경이 나를 사로 잡았다.
차도 올라올 수 있는 곳이라 일출 일몰 시간에 많이 붐비겠구나
언젠가 다시 오게 된다면 일출시간에 와보고 싶다.

이 안내판이 만인산까지 가게 만든 원흉(?)
보문산에 올랐을때도 많이 봤던 대전 둘레산길 안내판
군데군데 보이는 이정표에도 대부분 표시되어 있던 대전 둘레산길

보문산에서 이걸 봤을때만 해도
'음 대전 둘레를 산길로 연결했나보네'
하고 별 생각 없었는데


식장산에 올라 이걸 다시 봤을땐
'음 나도 한번 가볼까?'
하고 맘이 바뀌었다.

 

머릿속으로 대략적으로 그려본 루트는

평소와 같은 식장산 등산 - 둘레산길 4코스 역주행 - 4코스 시작점 닭재에서 하산


2015.09.14(월) 대전 둘레산길 4구간

2015년9월14일(월) 식장산 - 둘레산길 4구간 - 닭재 GPS 루트

여태까지는 두시간 내외정도 걸리는 산행이었기에 500ml 물병 하나만 들고 갔는데
대전 둘레산길 안내판에도 나와있듯이 근 4시간 이상 산행을 해야 하기에
출발전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맥스봉 물 500ml 두병을 구입해서 힙색에 넣고 산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장비의 중요성을 몰랐고 당장 산에 들고갈만한 가방이 힙색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는데...

어느덧 멀어진 식장산

식장산 능선에서 대전과 옥천의 경계길에 들어서니 가파른 내리막의 연속.
역시 장비의 중요성을 모르던 시기였기에 그저 평소에 신던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여태까지 경험 못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오려니 발목 무릎 통증과 더불어
엄지 발톱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때 뭔가를 느꼈어야 했는데 젊은 혈기?에 그저 직진한거 같다.

 

약 몇시간 걸려 최종 목적지인 닭재에 도착.
이번 산행에서 느낀점들을 보완하고 다음 산행을 대비했어야 했는데...
이때의 나는 그저
'성공했다!'
하는 성취감에 휩싸여
'4코스도 완주했는데
조금만 더 일찍 출발하면 3코스까지 하루에 완주 할수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없는 자신감만 뿜뿜해진 상태였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맞기전까지는


2015.09.17(목) 대전 둘레산길 4구간 3구간

2015년9월17일(목) 식장산 - 대전 둘레산길 4구간 - 대전 둘레산길 3구간 중 어느 골짜기에서 하산

아무 계획도 없던건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나름 준비한답시고
삼각김밥 한개 더 구입
소세지 한개 더 구입
에너지바 한개 추가 구입
물 500ml 한개 더 구입
그 작은 힙색에 억지로 우겨 넣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산행을 시작한다.

 

식장산을 오르는 중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 산행을 시작한 탓인지
추가 구입한 먹을거리 덕에 무거워진 힙색 탓인지
저번 산행에서 얻은 데미지가 아직 회복되기 전이라서 그런지
이전에 식장산 오를때보다 더 처지는 느낌을 받는다.
역시 별 생각없이 산행을 계속한다.

 

곤룡재를 지나자마자 삼각김밥을 섭취했다.
여기서도 이상함을 감지한것이
삼각김밥을 한입 베어무는데 아무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부드러운 플라스틱 같았다. 억지로 삼켰다.
물도 평소보다 더 많이 먹어서 잔여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
출발전 둘레산길로 검색해보니 닭재에서 물보충을 했다는 후기글을 본적이 있어서 그렇게 하려고 했으나...

닭재에 도착해서 주변을 뒤져 봤으나 식수원이 있을리가...
아마도 그 후기는 마을까지 가서 식수를 얻었다는 거 같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식수 보충 할만한 우물이나 약수터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후 둘레산길 3코스로 향한다.
식수가 많지 않은 상태여서 꽤나 고민하다가 강행하기로 했으나 불안했다.

 

4코스부터 3코스까지 2개의 코스를 연이어 산행을 하다보니

1개의 코스만 했을때 대비 피로도가 매우 컸다.
게다가 먹을거리는 바닥난 상태.
식수조차 바닥을 보이고 있다.


진행속도도 눈에띄게 늦어지고
발목 무릎 발가락 통증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보폭은 점점 짧아지고
내리막 길에선 발의 통증때문에 발을 내딪기도 힘든 상황

지옥같았던 마들령을 지나고

체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마주하는 마들령 오르막은 절망 그자체

이미 선택한 길인데 어떡하나 올라야지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낸다는 말이 무슨 소린지 와닿는 상황이었다.


이미 소지한 물과 먹을거리는 모두 소진한 상태
마들령을 지나니 엄청 큰 나무 데크가 보인다.
데크위에 쓰러지듯 누워 30분여간 실신했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45분
GPS를 측정중인 휴대폰도 배터리가 빨간색이다.

 이때부터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산에는 해가 일찍 진다고 하는데

하산하는 길도 없는데 내가 내려가고 싶다고

없는 산책로를 만들어가며 내려갈수도 없을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잡히고

휴대폰 꺼지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마지막 사진을 찍은 지점부터 조금 더 가다보니 내리막길이 등장한다.
이윽고 갈림길이 나왔는데
왼쪽방향으로 길이 있고 정면 방향으로는 무덤이 하나 보인다.


어느 방향이 맞는 방향인지 고민도 않고

무덤이 보이니까 무덤쪽이 맞는 길이겠지 하고 무덤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계속 내리막이 이어지더니 어느순간 길이 없어졌다.

낙엽과 자갈만 가득하고 사람 발길이 몇년동안 없던것 같은 곳이 나온다.

 

아까 왼쪽 방향이 맞는 길이었나보다.
다시 갈림길로 가자니 오르막을 올라가야 하는데
휴대폰은 배터리가 꺼지기 일보직전
해는 저 높은산 위에 턱걸이로 걸려있고
체력도 방전되어 오르막길을 가는건 무리다.
길이 아님을 알았음에도 그냥 이 길로 내려갈 수밖에


낙엽을 밟으니 발이 푹푹 꺼지고
자갈을 밟으니 미끄러지고 발목 꺾이고
미끄러지기를 수십번 반복한끝에 임도에 다다랐다.

이후의 대략적인 경로

다다른 곳은 어느골짜기
내려가다보니 민가에 한 어르신이 보인다.
물좀 한컵 주실수 있냐고 물으니 지하수니까 수도 틀어서 먹으라고 하신다.
호스를 입에 가져다 대고 수도꼭지를 돌린다
얼마나 들고 마시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다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하산길도 없는 곳인데

행색이 엉망인 녀석이 산길에서 내려와서

물좀 달라고 하는데 어르신 기분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죄송스럽다.


그렇게 수분 보충을 하고 임도를 따라 내려오는데
칼을 뽑았는데 무라도 잘라야지
그래도 원래 목표는 만인산인데 만인산까지는  어떻게든 도달해야하지 않나 하여
만인산 휴게소까지 걸었다.

만인산까지의 도로가 드라이브 코스로 최적이지만 걷는 사람에겐 최악의 길이다.
왕복2차선에 인도가 없어서 지나가는 차를 조심히 피해 가야했다.
가는길에 식당이 많았으나
목표 실패에 대한 좌절감 인지 자격지심 인지
그냥 걸었다.

그렇게 도로길을 걷고 걸어

식당들을 지나고 옛터를 지나고 카페베네를 지나서야

비로소 만인산 휴게소에 도착했고
식당가가 있나 찾아봤지만
호떡과 치킨집에 한정식만 있고 푸드코트 같은건 없더라
그렇게 쫄쫄 굶은 상태로 501번 버스를 타고 만인산을 떠났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사진 중에
고무신을 신고 높은 산 정상까지 오른 어르신 두분 사진을 봤는데
그 사진에 대한 기억이 나도 모르게 남아있었던거 같다.
'그래 등산에 장비가 다 무슨소용이냐 그냥 오르면 되는거지'

하지만 이번 산행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장비빨 중요하다.


이 산행으로 인해서
신던 운동화는 여기저기 찢어져 작살이 났고
힙색또한 끈 연결부위가 찢어져 너덜너덜
무릎 발목 발가락 발바닥 등 하체가 아작이 났다.

 

산행실패에 대한 아쉬움은 항상 남아 있어서
언젠간 다시 하게 되겠지 하고 기약없는 이별?을 했다.


그리하여 산행을 했던 2015년 부터
지금 글을 작성중인 2023년까지
산행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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